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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카께서 친히 국회에 납시어 한미FTA 비준동의를 요청하셨다..
그러면서 한가지 제안을 했다. 비준해주면 3개월안에 ISD를 논의하겠다고..
그리고 나서 미국에서 바로 반응이 왔다...그렇게 해주겠다고..

하지만 우린 이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이 말에 혹해서 논의의 가치도 없는 일로 하루종일 토론한 민주당이 그저 한심할 뿐이다.

가카의 제안을 믿을 수 없는 건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해보자...

내가 A라는 거래처와 거래 계약을 맺으려 하는데
A가 계약조건이 좀 부당한것 같다고 수정하자고 한다.
난 이미 계약서에 도장 찍었으니 우선 너도 계약서에 도장 찍고 그 후에 조건을 다시 협의하자고 했다.

당신이 A라면 이 제안 받아들이겠는가?
국회 비준은 일종의 나라간 계약에 도장을 찍는 것이다.
이미 도장찍은 계약서를 나중에 변경하자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다.
변경할 것이 있으면 도장찍기전에 변경을 하고 찍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도장을 찍고 나서 이미 도장찍어놓고 이제와서 왜 생떼를 쓰냐고 하면...
할말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건...
한미 FTA에 ISD말고 독소조항은 수두룩 하다는 것이다.
한미FTA를 반대하는 건 단지 ISD때문에만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한미 FTA 자체가 우리에게 불리한 협정이고 이것이 채결되는 순간 우리 경제의 대미 종속이 더 심화될 것이다. 특히 가장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자동차도, 실제로는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가 이미 미국에 현지 공장을 세우고 계속 확장하는 상황에서 한미FTA는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 현지 생산은 수출이 아니기에 관세나 수출과 관련된 사항에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미FTA는 굳이 우리가 채결할 필요가 없는 협정이다.
특히 ISD가 있다면 더더욱 채결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말그대로 꼼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상식에서 벗어난 제안과 그 제안으로 한미FTA자체보다 ISD하나로 그 사안을 축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꼼수에 절대 넘어가서는 안된다.
그리고 끝까지 한미FTA를 저지해야하며 이를 만약에 한나라당이 강행처리 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이를 강행처리한 한나라당 의원들 전원을 낙선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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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인 경주답사기를 써 보겠다~ 우리 답사 코스는 다음과 같다.

 

경주공고(흥륜사 터-새로이 흥륜사 터로 밝혀진 곳) -> 흉륜사(현재 흥륜사터로 알려져 있는 이곳은 영묘사터로 추정된다, 이차돈순교비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 김유신의 집터, 자매정 -> 점심식사 (1박2일이 남산 기행후 들렀던 칠불암 식당) -> 남산리 석탑 -> 서출지 -> 망덕사 -> 사천왕사 -> 선덕여왕릉

 

1. 경주공고(흥륜사 터-얼마전 흥륜사 터로 밝혀진 곳)

우리의 경주답사 첫 번째 장소는 듯밖에도 경주공고였다. 우리의 경주 답사 해설을 맡아주신 김윤근 선생님께서 경주공고에서 만나자고 하셔서 조금은 의아해하며 우리는 경주공고로 향했다. 경주공고는 김윤근 선생님께서 9년간 근무하셨던 학교로 그곳의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분이었다.

▲ 흥륜사 터로 밝혀진 경주공고

▲ 안내를 해주시는 김윤근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 듣는 우리 일행들

경주를 몇차례 답사를 하면서 불교를 모르면 신라의 역사와 경주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곳 흥륜사는 신라 문화의 시작이라고 볼수 있다. 흥륜사는 법흥왕때 불교가 국교가 되면서 지어진 신라 최초의 공식적인 절인다. (관련 내용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1757) 이곳 경주 공고에는 이를 증명할 유물들이 최근에 학교 수로를 공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이곳 학교 건물앞 화단엔 석탑의 기단으로 추정되는 돌과 광명대의 받침이 그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현재 경주에는 흥륜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절이 세워져 있으나 그곳은 영묘사터로 추정되며, 최근의 경주공고 수로 공사로 발견된 유물로 경주공고자리가 흥륜사 터라는 것이 밝혀졌고 경주시의 계획에 따라 경주공고를 이전하고 이곳을 발굴하기위한 계획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 흉륜사 탑의 기단으로 추정되는 돌, 경주공고 화단에 있다

 

▲ 흥륜사 광명대의 받침으로 추정되는 돌, 연꽃 무늬가 아직도 선명하다. 역시 경주공고 화단에 있다.

경주는 시 전체가 박물관이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는 천년의 수도, 또한 유일하게 통일이후 250여년을 버틴 나라...그 시작이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 그 시작이 흥륜사라는 점에서 중요한 곳이라 생각된다. 하루빨리 경주공고가 이사가고 발굴되어 그 본연의 의미를 되찾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2. 흉륜사(현재 흥륜사터로 알려져 있는 이곳은 영묘사터로 추정된다, 이차돈순교비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 흥륜사라고 간판이 붙어있으나 영묘사가 있던 자리로 추정된다.

두 번째로 우리가 찾아간 곳은 현재 흥륜사로 알려진 곳이다. 이차돈의 순교비가 있는 곳으로 김윤근 선생님은 이곳을 영묘사가 있던 곳이라고 추정한다고 하셨다. 영묘사는 선덕여왕의 예지력에 얽힌 설화가 있는 곳이다.(영묘사에 대한 설명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67450) 선덕여왕이 영묘사의 우물에서 하얀 개구리가 3~4일간 계속 우는 것을 보고 여근곡(여성의 성기 모양의 계곡)에 백제군이 숨어 있다고 여겨 군사를 보내보니 그곳에 백제의 군사들이 매복해 있어 이를 물리쳤다는 설화다.(선덕여왕 설화 http://100.naver.com/100.nhn?docid=758293)

▲ 이차돈 순교비. 향을 피우는 곳 바닥에 새겨진 꽃문양이 인상적이다.

현재 이곳에는 이차돈의 순교비가 있다. 법흥왕때 사람으로 불교가 신라의 국교가 되게하고자 순교한 사람이다.(이차돈에 대한 설명
http://100.naver.com/100.nhn?docid=128241) 신라의 귀족들의 반발로 불교가 들어오지 못하고 있을 때 이차돈이 부처님이 계신다면 자신이 죽게되면 이적이 일어날 것이라 예언을 하고 순교하였다. 이차돈의 예언대로 이차돈의 목을 베는 순간 하얀 피가 솟구쳐 오르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렸다. 그리고 그의 머리는 하늘로 올라 북쪽에 있는 산에 떨어졌다. 이곳에 법흥왕은 절을 지어 이차돈을 위로했다고 한다. 이렇듯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는 신라의 정식 국교가 되었고 이후 신라는 불교를 통해 번성한 나라가 되었다.

이후 답사의 내용은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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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기행~ 

개인적으로 경주는 4번째다. 처음 경주를 왔을 때 김윤근선생님의 안내로 경주의 다양한 역사이야기와 설화를 들으며 역사답사를 했다. 두 번째는 혼자 주산지여행을 하러 가는 경우지로 경주 시내권 지역을 도보로 여행을 했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지난 9월 청년회 사람들과 기행, 그리고 이번 기행은 세 번째 기행에서 김윤근 선생님의 안내에 감동받은 회원들끼리 다시 찾은 것이다. 이번 기행은 정말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기행이었다.


 
일단 우리는 2박3일 일정으로 경주를 찾았다. 원래 아는 분의 회사를 통해 대명리조트를 빌리려 했으나 일이 좀 꼬여서 펜션을 잡기로 했다. 하지만 경주 시내 펜션은 모두 너무 비싸서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감포항 근처 펜션을 예약했다. 경주 시내는 대략 1박에 10~15만원이지만 문무대왕릉근처 바닷가는 1박에 5~8만원선이었다. 차로 이동하기에 시내까지는 대략 30분정도 걸리지만 숙박비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기에 감포항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서울서 모두 퇴근후 8시에 모여 출발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대략 새벽 1시반..우리는 간단하게 맥주한자하고 내일 아침부터의 답사를 위해 잠을 청했다.


 
우리의 기행코스는 다음과 같았다.

  경주공고(흥륜사 터-새로이 흥륜사 터로 밝혀진 곳)

흉륜사(현재 흥륜사터로 알려져 있는 이곳은 영묘사터로 추정된다, 이차돈순교비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김유신의 집터, 자매정

점심식사 (1박2일이 남산 기행후 들렀던 칠불암 식당)

남산리 석탑

서출지

망덕사

사천왕사

선덕여왕릉

 

김윤근 선생님과 경주 답사를 3번이나 하면서 이제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보다, 건물이 화려하고 멋있는 곳보다 아무것도 없는 00터들이 가장 기억에 남고 또 경주에서 가장 멋진 곳으로 느껴진다. 첨성대, 대릉원, 안압지 같은 곳보다. 나에게 가장 경주하면 떠오르고 가장 인상깊은 곳은 황룔사 터다. 분황사 옆에 있는 황룡사터는 그냥 가면 그냥 주춧돌 몇 개 있는 허허벌판이다. 하지만 황룡사에 깃들어 있는 의미와 선덕여왕의 통일을 위한 준비와 의지를 알게 된다면 다들 아무것도 없는 그 벌판이 나처럼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몇주전 1박2일에서 경주 남산을 답사하면서 사람들이 역사답사를 다시 찾고 있다. 하지만 단순하게 표면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현재와 함께 고민하면서 역사를 바라보고 다시 한번 그의미를 되새기는 답사는 더더욱 사람들의 마음속에 경주라는 곳을 깊이 새길 수 있게 할 것이다.

이제 이번 기행의 각각의 코스에 대한 기행문을 써보려 한다. 각각의 장소에서 느꼈던 감동과 그 각각의 장소의 의미를 함께 공유 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김윤근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역사문화 답사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답사는 입장료내고 들어가는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정말 이번 답사를 통해 다시한번 느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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